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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 마을은 201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매년 약 100만 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하회 마을은 경상북도 안동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마을로 조선시대의 건축, 민속전통, 귀중한 책과 씨족 기반 마을의 오래된 전통을 보존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 문화의 귀중한 부분입니다.
하회 마을은, 14~15세기에 세워졌는데, 밀접한 관계의 가족들로 집중되어 있는 마을로, 한국에서 가장 높게 평가받는 역사적인 마을 중 하나입니다. 정착지에는 조선 초기의 귀족적인 유교 문화를 반영하는 가족들의 거주지, 정자, 서원 및 학습을 위한 정자 등이 포함됩니다. 마을 내에는 124채 중 6채가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마을의 북쪽에는 부용대가 있고 남쪽에는 남산이 있습니다. 하회 마을은 풍수지리학의 지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꽃 모양 또는 두 개의 쉼표 모양을 보이고 있습니다.
풍산 류 씨가 하회 마을을 조선시대(15세기)에 세웠고 이후 이곳은 씨족 공동체였습니다. 하회 마을은 서원 및 건물 등 원래의 건조물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기에 주목할 만합니다. 그리고 이곳에는 마을의 공동체 정신을 기리는 무속 의식인 하회탈춤극(별신굿)과 같은 민속 예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마을은 남촌과 북촌으로 나뉘는데, 남촌 쪽에는 겸암 파인 풍산 류 씨가 주축을 이루고 있고, 북촌 쪽에는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재상 류성룡의 후손인 서애 파가 또 한 축을 이루고 있습니다. 북쪽 마을에는 보물 제306호로 지정된 양진당이 있으며, 남쪽 마을에는 보물 제414호로 지정된 충효당이 있습니다. 하회 마을은 한국의 급격한 근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오래된 건축 양식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귀족들의 기와집과 서민들의 초가집은 지금까지도 조선 왕조의 건축 양식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원지 정사와 병산서원은 그 마을에서 주목할 만한 두 건축물입니다. 그 마을은 별신굿의 무속인 의식을 보존하고 하회탈춤에 사용되는 하회탈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행해지고 있는 또 다른 의식은 부용대 절벽 아래에서 발화되는 불꽃 줄을 이용한 줄불놀이입니다. 영모각은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냈던 류성룡의 유물을 보존 전시하는 곳으로 임진왜란을 기록한 책인 국보 제132호 징비록이 보관하고 있습니다. 마을 안에는 한국의 무속신앙에서 삼신 할미의 고향이라고 불리는 650년 된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방문객들은 종이에 소원을 적어 나무 옆에 걸어줍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1999년 하회 마을을 방문했으며, 여왕의 방문 기간에 마을 주민들은 여왕의 73번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파티를 열었습니다.
경주 양동민속마을은 조선 시대의 전통적인 양반 마을로 2010년 하회 민속촌과 함께 유네스코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이 마을은 경상북도 경주시로부터 북동쪽 16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강동면에 형산강을 따라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북쪽에는 설창산이 있습니다. 양동민속촌은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양동 마을은 규모와 보존 상태, 수많은 문화재, 전통 및 아름다운 자연환경 등에서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마을은 양반의 생활방식과 성리학적 전통의 또 하나의 좋은 예입니다. 이 마을은 손소(1433~1484년)에 의해 세워졌습니다. 월성 손 씨 집안은 풍수지리설에 따라 재물복이 많은 지역에 자리 잡았습니다. 비록 마을의 일부가 오늘날 비어 있지만, 마을 전체는 울창한 숲속에 160개 이상의 기와집들과 초가집들이 있으며, 200년이 넘는 54개의 역사적인 집들도 보존되어 오고 있습니다. 그 마을은 조선 시대 건축의 전통적인 건물들뿐만 아니라 민속 풍습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마을은 산과 계곡의 지형을 따르고 있고 상서로운 한자 모양을 하고 있으며 이 배치는 정성스럽게 보존되어 왔습니다. 월성 손 씨와 여강 이 씨의 집과 그들의 후손들의 집은 산과 계곡의 높은 지대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초가지붕이 특징인 하층민의 집은 낮은 지대에 지어졌습니다. 마을의 구성은 조선 시대 사회의 심각한 사회 계층화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찰스 왕세자는 1993년 양동을 방문했습니다.
조선왕릉(조선왕조의 무덤)은 2009년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1392년부터 1910년 사이에 한국을 통치했던 왕가의 무덤 40개를 말합니다. 이 무덤들은 한반도에 18곳에 흩어져 있습니다. 이것들은 그들의 조상들과 업적을 존중하고 예우하며 왕실의 권위를 옹호하기 위해 지어졌습니다. 북한 개성에 있는 두 개의 다른 조선왕릉들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제출되지 않았습니다.
무덤은 릉과 원의 두 가지의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왕과 왕비, 사후에 왕이나 왕비의 칭호를 받은 사람들은 릉 유형의 무덤에 묻혔고 왕세자들과 그들의 부인들은 원 유형의 무덤에 묻혔습니다. 왕릉은 18곳에 흩어져 있는데, 그중 많은 곳이 서울에서 4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나 멀리 떨어져 있는 곳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릉은 강원도 영월에 있으며 영릉은 경기도 여주에 있습니다. 무덤들은 개인들 또는 가족 집단으로 만들어졌습니다. 40개의 릉형 무덤과 13개의 원형 무덤이 있어서 총 53개의 왕실 무덤이 만들어졌습니다.
조선시대 왕릉은 중국의 유교 문헌에 나와 있는 지침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무덤은 한국의 자연환경과 전통적인 매장 의식을 고려하여 건설하였습니다. 무덤의 위치를 결정할 때에는 한성(오늘날의 서울)과의 거리, 다른 왕릉과의 거리, 접근성 그리고 한국 전통의 풍수 등 많은 요소들을 고려하였습니다. 북한 개성에는 제릉과 후릉이 있습니다. 제릉은 태조의 첫 부인 신의왕비의 무덤이고, 후릉는 정종과 정안왕비의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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