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선사 시대 중 구석기시대는 5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그보다 늦게 40만 년 전이라 하기도 하며 또는 더 거슬러 올라가 60만~70만 년 전에 시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합니다. 구석기 시대에 도구 만드는 유물이 발견되었던 곳은 한국에서는 경기도 지역과 충청도 남쪽 지역 및 북쪽 지역에서 발견되었으며, 북한 지역에서는 함경도 북쪽 지역과 평안도 남쪽 지역에서 발견되기도 하였다. 한반도에는 호모에렉투스인 이 있었다는 화석은 발견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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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바에 의하면, 가장 오래된 토기는 기원전 8,000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한국의 도자기 역사가 이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동안 안정되어 있었던 까닭에 한반도 지역에 특화된 장인 기술을 확립하게 해 주었습니다. 제주도를 비롯한 반도 전역에서 중석기시대 무덤 문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7,000년 이후에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었으며, 선사시대의 취락지는 강동구 암사동 등 한반도 중서부 지역 일대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즐문토기는 다음과 같은 지역에서 디자인이 유사한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주 아무르강 지역 및 송화강 유역, 몽고, 일본의 조몬 문화, 중국 남부 및 동남아시아 지역)
암사동 선사유적지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동구에 위치해 있으며, 1925년 홍수 때 사선 무늬 토기가 다량으로 노출된 후 신석기 유적이 발굴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곳에서 발견되고 기원전 4,00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빗살무늬토기 항아리가 현재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1,500년~300년경으로 추정되는 무문토기 시대는 정치사회적인 복잡성의 초기 모습과 농업사회가 출현했음을 고고학적인 증거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문토기 시대 초기(기원전 1500년~850년)에 한반도 남부에서는 대량의 농작물을 재배할 수 있는 농경지와 논농사를 집중적으로 채택했습니다. 족장이나 거물이 이끄는 최초의 사회가 중무문토기시대(기원전 850년~기원전 550년)에 출현했고, 최초의 과시인 매장이 후기 무문토기 시대(기원전 550년~기원전 300년)에 나타났습니다. 중무문토기시대에 시작되기 시작한 청동기의 생산은, 기원전 700년 이후에 생겨난 각종 행사나 의식으로 정치적인 사회에서, 점점 중요성이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대평, 송국리, 이금동 등에서 보여주는 고고학적 증거들은 무문 시대에서 정치적인 집단이 부상하고 팽창하고 붕괴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장거리 무역이 증가하였고, 국지적인 분쟁이 증가하며, 청동과 철 야금의 도입이 되는 것은 기원전 300년경의 후기무문시대가 저물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한반도 남단에서 발견된 무덤 73개는 일본에서 발견된 무덤과 유사하였습니다. 이것은 기원전 100년에 고조선에서의 무덤과 유사합니다. 따라서 옹관묘가 발견된 것은 그 시대에 고조선과 일본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며, 옹관묘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즐문토기 시대(기원전 8000년~ 1500년)는 한반도에서의 고고학적 선사시대입니다. 이 시기에는 중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로의 전환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초기 단계(기원전 8000년)에서 중기 단계(기원전 3500년), 그리고 후기 단계(기원전 1500년)로 전환되었습니다. 도자기의 존재로 이 시기 전체 기간과 한반도 신석기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즐문은 빗살 무늬라는 뜻으로, 특히 기원전 4000년에서 2000년 사이에 만들어진 토기의 모양이 공통적으로 대다수가 비슷한 형상을 가진 토기로 인하여 그 장식 토기의 이름을 따서 그 시대를 즐문토기 시대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즐문토기 시대 유적 발굴이 1990년대 중반 이후 활발해지면서 동아시아 선사시대에 대한 자료가 많이 증가하였습니다.
무문토기 시대는 한국의 고고학적 선사시대로 기원전 1,500년~300년으로 추정하며, 이 시기에는 대부분의 토기가 장식이 없으며, 소박한 용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용기의 모습에 착안하여 이 시대를 한국식 이름으로 무문토기 시대라 하였습니다. 무문토기 시대는 생산성이 높은 농업을 하려 노력하였으며, 다양한 사회로의 전환의 시초로 알려졌습니다. 이 시기를 한반도의 청동기시대로 분류하였지만, 이 지역의 청동기는 기원전 8세기 후반까지도 생산되지 않았고, 청동기 유물도 흔하지 않았습니다. 기원전 300년 이후까지도 청동의 분포가 극단적으로 지역화되어 있어 한반도에서의 청동기시대 적용은 오해할 소지가 다분히 있습니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시기는 일반적으로 기원전 1,000~800년경이라고 하며, 청동기 시대로의 이행은 기원전 23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성벽으로 둘러싼 마을이 발견되기도 하고, 거울, 보석, 청동검 등 무기가 발견되기도 하였습니다. 여러 가지 곡식들(쌀, 팥, 콩, 기장 등)이 경작되었고, 직사각형의 구덩이 집이 발견되기도 하며, 고인돌 매장지가 한반도 전역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 이전에 고조선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봉건적 도시 형태에서 중앙집권적으로 왕국을 형성하였습니다. 또한 기원전 4세기 즈음에 오늘날의 연해주인 북쪽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한반도에서 철 문화가 시작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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