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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백제 (삼국시대 1)

한국사

by 우리들 블로그 2024. 5. 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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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구려는 주변의 한반도 왕조 및 중국 왕조 등 유목국가, 일본과의 전쟁을 포함하여 매우 군사주의적으로 강한 국가로 동아시아의 강대국 중 하나였습니다. 고구려 후기 연개소문의 죽음으로 오랜 내분이 지속된 결과 서기 668년 신라와 당의 동맹에 의해 패배할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주몽이 건국하였습니다. 이후 태조는 정부를 중앙집권화하였습니다. 고구려는 372년 소수림왕 때 국가 종교로 불교를 채택한 최초의 나라였습니다. 고구려는 고려라고도 불리었으며 한국의 현대적 이름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3세기와 4세기에는 중국인과 시안베이와의 영토 경쟁으로 손실과 이익을 동시에 모두 가져왔습니다.

 

고구려는 242년 중국의 요새를 공격, 고구려와 위나라 간 전쟁을 일으킴으로써 한반도 영토에 대한 중국인들의 접근을 차단하고자 하였습니다. 244년에는 중국 삼국시대의 조위가 환도를 침략하고 파괴함으로써 앙갚음을 하였습니다. 이로써 왕은 조위에 쫓겨 도망하게 되었고, 옥조와 예에 대한 고구려의 지배가 어려워졌습니다. 또한 경제에도 많은 손상을 입었습니다. 왕은 결국 새로운 수도에 정착하였고 재건과 지배권 회복에 집중했습니다.

 

4세기 초 고구려는 다시 중국을 공격하여 그들의 한국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였습니다. 이번에는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 낙랑과 대방군 정복하여 중국인의 존재를 한국에서 종식하였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의 확장은 시안베이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시안베이는 4세기 중반에 고구려의 수도를 황폐화 시켰고 왕은 퇴각하였습니다. 고구려는 결국 4세기 후반에 재편성하여 반격을 시작하였으며, 광개토 대왕 때 정복으로 그 세력이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고구려의 위세는 5세기에 정점을 찍었으며 동아시아에서의 강대국 중 하나가 되어, 광개토 대왕과 아들 장수가 만주 전역으로 나라를 확장하였고, 러시아와 내몽골의 일부로도 세력을 확장하였으며, 오늘날의 서울을 백제로부터 빼앗았습니다. 고구려는 광개토 대왕과 장수왕이 통치하던 시절 황금기를 누렸으며, 백제와 신라도 지배하였으며, 짧은 기간 동안 삼국통일을 달성하여 한반도에서 가장 지배적인 세력이 되었습니다. 장수왕은 고구려를 79년을 통치하는 동안 정치 및 경제를 비롯한 모든 상황을 제도적으로 완벽하게 정비하였습니다. 고구려는 군사적으로 매우 강한 국가였습니다. 고구려는 한반도의 지배권 다툼 외에도 중국의 여러 왕조와 군사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특히 전설적으로 백만 명 이상의 대군을 물리친 고구려의 수나라 와의 전쟁은 수나라를 멸망하게 하였습니다.

 

642년 연개소문이 쿠데타를 주도하여 고구려를 완전히 장악하였습니다. 당시 당 태종은 고구려에 대응하는 작전을 주도하였으나 실패하고 퇴각하였습니다. 그의 아들 고종은 자신이 죽은 후 신라와 동맹을 맺고 다시 고구려를 쳐들어 갔었으나 견고한 방어선을 넘지 못하고 고구려에게 패퇴하였습니다. 그때가 서기 662년이었습니다.

 

그러나 666년 연개소문이 죽은 후, 고구려는 혼란에 빠지며 점점 더 그 위세가 약화되어 갔습니다. 이것은 그의 아들과 동생들이 권력을 계승하고자 하는 장기간의 내분과 투쟁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결국에는 장남은 당나라로 망명하고, 동생은 신라로 도망가게 되었습니다.

 

서기 667년 당과 신라의 동맹은 망명자 연남생의 도움으로 다시 고구려에 대한 공격을 시도하였으며, 결국은 고구려를 정복하였습니다. 이때가 서기 668년이었습니다.

 

고구려가 무너진 이후, 신라는 당나라와의 동맹관계를 끝내고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하여 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신라는 한반도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성공하였으나, 당나라는 고구려의 북쪽 영토를 차지하였습니다.

그런데 고구려가 멸망하고 30년이 지난 후 옛 고구려 장군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였고, 이후 옛 고구려 대부분의 영토에서 당나라를 쫓아냈습니다.

 

백제

온조는 기원전 18년에 백제를 건국하였습니다. 원조는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고구려와 건국 신화를 공유한 백제는 부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삼국 실록에는 백제가 오늘날의 서울의 한강 유역에 있었던 마한 동맹의 일원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제는 오늘날의 충청도 및 전라도가 있는 남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였고 정치적 및 군사적으로 강력한 세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토 확장에 대한 야망으로 백제는 고구려 및 중국과 격렬한 대립 관계를 가졌습니다.

백제는 4세기 근초고왕 때 전성기를 맞이하여 마한을 흡수하였으며, 오늘날의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와 강원도와 황해도의 일부를 포함한 한반도 서부 대부분을 중앙정부에 예속하였습니다. 백제는 세력 확장 과정에서 남조와의 해상무역 접촉으로 중국의 문화와 기술을 얻게 되었습니다.

 

백제는 해상무역의 대국이 되었습니다. 발전된 항해술은 불교를 동아시아 전역으로 불교를 전파하였고, 일본에는 대륙문화를 전파하였습니다. 즉 백제는 중국의 문자를 비롯하여 제철 및 발전된 도기와 매장문화 및 불교 같은 문화발전 상황을 고대 일본에 전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신라와 당나라 동맹에 의해 패망한 백제가 백제 궁정을 일본으로 퇴각하였을 때, 또 다른 문화적 관점을 일본에 보여주었습니다. 한때는 군사적 강대국이었던 백제는 결정적으로 근초고왕 시대에 고구려의 광개토 대왕에게 패배하여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백제는 결국 서기 660년 신라 당의 연합군에게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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