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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가야, 남북국가, 통일신라, 발해 1 (삼국시대 2)

한국사

by 우리들 블로그 2024. 5. 15. 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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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신라는, 전설에 의하면, 기원전 57년에 박혁거세가 진한 동맹 6개 왕국을 통합하면서 한반도 동남쪽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였습니다. 당시 신라의 영토에는 오늘날의 항구도시 부산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신라는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일본의 해적들을 괘멸시키는 등 해상 강국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독특한 금 세공품 등 여러 가지 유물들을 연구해 보면, 북방 유목민들과 이란인 특히 페르시아 사람들의 영향을 받은 것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지역 특성상 고구려 백제보다는 중국의 영향을 덜 받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신라는 도시국가들을 통합하고 낙동강 유역을 차지하면서 급속하게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신라는 2세기까지 매우 큰 나라가 되었습니다. 인근의 도시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기도 하였고 점령하기도 하였습니다. 서기 562년 신라는 가야연맹을 합치면서 세력을 더욱 더 확장하였습니다. 신라는 가끔 고구려 백제를 비롯하여 일본으로부터 심한 압력을 받아 때때로 백제 또는 고구려와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전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한국의 삼국 중에 가장 약하고 가장 작았지만, 교묘한 외교 수단을 사용하여 보다 힘이 있는 한국에 있는 국가들과 더 나아가 당나라와도 기회주의적인 협정을 맺거나 동맹을 하여 크나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서기 660년에 신라 무열왕은 백제를 공격하라고 하였으며, 그의 명령을 받은 신라의 김유신 장군의 군대는 당나라 군대의 지원을 받아 백제를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탄력을 받은 신라와 당나라 군대는, 서기 661년 고구려로 진군하였지만, 고구려 군대에 의하여 격퇴되고 말았습니다.

 

서기 667년 무열왕의 아들이자 김유신의 조카인 문무왕 시절에 신라는 또 다시 고구려를 함락하고자 원정을 시작하였고, 그 이듬해인 서기 668년에 고구려를 함락시키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가야

가야는, 한반도 남쪽의 낙동강 유역 계곡에 있던 작은 왕국들의 연합으로, 서기 42년부터 시작하였고 삼한시대에 있어서 변한 동맹으로 성장하였습니다. 가야의 평원은 철의 생산이 풍부하였고 철로 만든 농기구 등 각종 도구를 수출할 수 있었으며, 농업 또한 활발하게 번창할 수 있었습니다.

 

1세기 초기에는 김해지역에 위치하고 있는 금관가야가 그 동맹체를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5세기 이후 고령지역에 있었던 대가야로 권력의 힘이 이동하여 그 동맹체를 이끌어 갔습니다.

 

그러나 가야 주변을 둘러싼 삼국과 끊임없이 전쟁을 벌이던 가야는 통일국가로 발전할 수가 없었고, 결과적으로 서기 562년에 신라에 흡수 합병되었습니다.

 

남북국가

남북국가라는 말은 통일신라와 발해를 말합니다, 신라가 한반도 대부분을 지배하고 발해가 만주로 세력을 확장한 시기를 말합니다. 이 시기에 통일신라를 중심으로 기술과 문화가 두드러지게 발전했습니다.

 

통일신라

통일신라는 예술과 문화가 꽃피던 황금시대였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불국사와 석굴암 등 불교사찰은 한국의 발전된 건축 기술과 불교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시대의 다른 국가가 후원한 예술품과 건축물은 황룡사와 분황사가 있었습니다.

불국사

 

통일전쟁이 끝난 이후 당나라는 옛 고구려에 주둔기지를 설치하였으며, 백제에는 사회 공동체를 설치하였으며 또한 이를 관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고구려 및 백제를 멸망시킨 후 3년이 되던 해인 서기 671년 옛 백제와 북쪽의 옛 고구려에 주둔하고 있었던 당나라 세력들을 공격하였습니다. 이후 당나라는 서기 674년에 신라를 침공하였지만, 서기 676년에 신라는 당나라 군대를 한반도에서 완전히 몰아내어 대부분의 한반도를 통일하였습니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킨 통일신라는 동아시아의 페니키아인처럼 백제가 행했던 해양기술의 힘을 계승하였으며, 8세기에서 9세기에 걸쳐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함으로써 한국과 중국 및 일본 등 간의 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장보고가 활동하고 있던 시기에는 그의 활동이 더욱더 두드러졌습니다.

통일신라 사람들은 중국의 산둥반도와 양쯔강 하구에 해외 공동사회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통일신라의 수도경주는 세계의 도시 중 4번째로 큰 도시이었으며, 통일신라는 날로 번영하고 부유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8세기 후반에 들어 신라는 정치적으로 커다란 문제로 격변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신라는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이어서 옛 백제의 후손들에 의해서 후백제가 건국하게 되었습니다. 북쪽에서도 반란군에 의해서 고구려가 부활하였습니다. 이로써 후삼국시대가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기 935, 통일신라는 경순왕이 고려에게 나라를 넘겨주고 항복할 때까지 267년간 지속되었습니다. 신라는 통일신라를 포함하여 992년동안 56명의 군주가 나라를 지배하였습니다.

 

발해 1

발해는 고구려가 서기 668년에 멸망한 후 30년이 지난 698년에, 고구려의 장군이었던 대조영에 의해 옛 고구려의 북쪽 지방에 건국되었습니다. 발해는 한반도의 북부 지역과 만주의 대부분을 지배하였고 오늘날의 러시아 연해주로 세력을 확대하였습니다. 발해는 당시 당나라의 문화를 채택하여 정부의 구조와 문화적 시스템을 적용하였습니다.

발해는 선왕과 문왕때 비교적 평화롭고 안정된 시기를 보내면서 번창하여 동양의 번영한 나라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서기 926년에 세력이 심각하게 약화되어 요나라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삼국시대 3에서 계속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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