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의 많은 난민들은 고려가 환영하며 받아들였습니다. 발해의 마지막 왕자인 대광현도 마찬가지로 환영을 받으며 왕건의 황족 가족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이로써 고구려의 두 계승 국간의 국민적 통합을 이루었습니다.
발해에 대한 역사적 기록물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요나라에도 발해의 역사가 남아있지 않았습니다.
고려는 발해의 영토 일부를 흡수하였고 발해의 난민 20여만 명을 수용하면서 발해를 멸망시켰던 요나라와는 적대관계를 계속 유지하였습니다.
하지만 고려의 공식적인 역사기록물인 삼국사기에는 발해의 왕가에 대한 기록은 존재하지는 않지만, 발해에 대하여 일부 언급하고 있습니다.
발해의 역사가 한국 역사에 포함된 것은 1287년 고려 학자인 이승휴 선생의 제왕운기에 처음으로 기록하였습니다. 18세기 조선왕조 때의 역사학자인 유득공은 발해를 한국의 역사로써 올바른 연구를 하자고 주장하였고, 이 시대를 가리켜 남북조시대라는 이름을 만들었습니다.
후삼국시대(서기 892년~936년)는 통일신라와 재건된 고구려와 백제로 구성 하고 있습니다. 재건된 고구려와 백제는 역사학적으로 후고구려와 후백제로 알려져 있습니다.
통일신라의 권력이 9세기 후반에 들어 약해지고 엄청난 세금을 국민들에게 부과함으로써 전국적으로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고, 쇠락하는 왕국에 대항하여 지방의 강력한 영주들이 일어났습니다.
후백제는 서기 892년 견훤 장군에 의해 세웠졌으며, 후백제의 수도는 오늘날의 전주인 완산주에 정착하였습니다. 후백제는 백제의 옛 영토였던 남서부 지역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서기 927년에 후백제는 통일신라의 수도인 경주에 대한 공격에 성공하여, 왕 자리에 꼭두각시를 앉혔습니다. 그러나 견훤은 후계자 분쟁으로 인하여 그의 아들들에 의해 쫓겨나게 되었고 결국 고려로 탈출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이 세웠던 왕국을 정벌하는 장군으로 지냈습니다.
후고구려는 서기 901년 승려 궁예가 건국하였고, 수도는 오늘날의 개성인 송악에 정착하였습니다. 후고구려 왕국은 고구려 피난민들의 본거지인 북쪽 지역에 기반을 두게 되었습니다.
이후 후고구려의 명칭은 904년에 마진, 서기 911년에는 태봉으로 변경하였습니다. 918년 고구려계의 탁월한 장군인 왕건은 점점 의심이 많아지고 난폭하게 변하고 있었던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였습니다.
이후 936년까지 고려는 그의 라이벌들을 정복하면서 후삼국을 통일하였습니다.
고려시대는 서기 918년 고구려계의 장군 왕건이 건국하며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936년까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한국의 왕조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고려라는 명칭은 고구려의 후손인 왕건이 고구려를 계승한다는 의미로 명명하였습니다. 왕건은 그의 고향이자 오늘날의 개성인 송악을 수도로 만들었습니다. 고려 왕조는 1392년까지 지속하였고, 고려의 정부는 군사정권의 지도자들이 1170년부터 1270년 사이 약 100년간 지배하였습니다. 고려의 영문명이 오늘날 한국의 영어 이름 Korea의 출처라 할 수 있습니다.
고려는 이 기간 동안 법률을 성문화 하였고, 공무원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불교가 번창하였고 한반도 전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청자 도자기의 발달은 12세기 및 13세기에 걸쳐 활발하게 꽃을 피웠습니다. 팔만대장경이라 불리는 81,258장의 나무로 만든 인쇄 블록이 제작되었고, 금속활자도 발명되었습니다. 이것은 고려의 문화적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18년 요나라는 그 시대에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고려를 침공하였으나 귀주 전투에서 강감찬 장군에게 패하여 결국 고려와 거란 간의 전투는 종결되었습니다. 거란을 물리친 고려는 한 세기에 걸쳐 황금시대를 보냈고, 인쇄술과 출판에 커다란 발전을 함으로써 배움을 촉진할 수 있었고 철학 및 문학, 종교와 과학에 대한 지식을 쉽게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1100년까지 12개의 대학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유명한 학자와 과학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서기 1231년 몽골군은 고려에 대하여 39년간 투쟁을 하면서 7차례의 큰 전투를 하였지만, 고려를 정복하지는 못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싸움으로 지쳐버린 고려는 원나라에 황태자를 보내 충성을 맹세하였습니다. 쿠빌라이 칸은 이를 받아들여 그의 딸 중에 한 명을 황태자와 결혼 시켰다. 고려는 그 후 80년 동안 몽골이 지배하는 원나라의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두나라는 80년간 얽혀있어, 이후 고려의 모든 왕들은 몽골의 공주들과 결혼하였고, 원나라의 마지막 황후는 고려의 여성이었습니다.
1350년대에는 원나라가 내부 투쟁으로 급속하게 쇠퇴하면서 공민왕은 고려를 개혁하게 되었습니다. 공민왕은 불교도와 유학자들 간에 불거지고 있는 증오심을 억제하고, 친원 귀족들과 군관들 제거와 토지 소유 문제 등을 포함하여 대처해야 할 다양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격동의 시기에 1356년 고려는 순간적으로 랴오양을 정복하였고, 1359년과 1360년에 있었던 두 번에 걸친 홍건족의 대규모 침략을 물리쳤습니다. 1364년 고려를 지배하기 위한 원나라의 마지막 침공을 최영 장군이 물리쳤습니다. 1380년대에는 고려는 왜구의 위협에 눈을 돌렸으며, 최무선이 만든 해군의 포를 이용하여 수백 척의 해적선을 전멸시켰습니다. 고려는 1392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조선왕조의 시조인 이성계가 1388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뒤 두 군주의 배후에서 권력자로 역할을 행사한 후 1392년에 조선왕조를 수립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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